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마운트배튼 (문단 편집) === '마운트배튼 왕조'의 개창을 막은 원흉? === 세간에는 루이 마운트배튼이 경솔하게 입을 놀리는 바람에 영국 왕실이 마운트배튼이라는 성씨를 쓰지 못하고 윈저 가문이라는 이름으로 고정시켜버렸다는 에피소드가 알려져 있지만, 이는 상당히 왜곡된 정보다. 대략 알려진 이야기는 이렇다.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사망하고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 때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은 무모하게도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이 (자신의 조카) 필립이니, 왕가의 이름은 마운트배튼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조지 5세]]의 왕비이자 [[조지 6세]]의 모후이며 [[엘리자베스 2세]]의 조모로서 아직 생존해 있던 [[테크의 메리|메리 대왕대비]]가 매우 격노하고, '''영국의 왕가는 앞으로 계속 윈저가 될 것'''이라고 [[윈스턴 처칠]]에게 통보하여 앞으로도 마운트배튼으로 바뀌는 일은 절대로 없게 되었다. 마운트배튼 백작은 자신의 실언으로 '''현 영국 왕조의 이름이 윈저로 굳어지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왕실의 이름을 윈저라고 바꾸던 당시에 영국 왕실의 어른들과 정부 수뇌가 함께 모여 앞으로는 여왕이 즉위해도 여왕의 남편 가문 이름으로 바꾸는 일 없이 영국 왕실은 영원히 '''윈저'''라고 한다는 내부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다만 내부적 합의였기 때문에 현장에 없었던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테크의 메리|메리 대왕대비]]가 격노한 사실도 없다. 메리 대왕대비가 사돈의 경솔한 발언에 격노했다 운운하는 건 메리 대왕대비와 루이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루이 마운트배튼이 윈저궁에서 태어났을 때 메리 대왕대비는 이미 영국 왕실에 시집와서 아들을 둘이나 낳은 상태로 차차기 왕위 계승자의 아내로 윈저궁에 거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메리 대왕대비는 루이가 태어나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빅토리아 여왕이 참석해서 치룬 루이의 세례식에도 함께 있었으며, 루이가 자기 아들들([[에드워드 8세]],[[조지 6세]])과 함께 놀면서 자라고 자기 아들들과 함께 왕실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모두 보았고 또 에드위나와 루이의 결혼식에도 자리를 함께 했었던[* 당시 국왕이던 남편 [[조지 5세]]도 현장에 하객으로 와 있었고,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8세|맏아들]]은 아예 신랑 들러리였다.] 인물이다. 메리 대왕대비와 루이는 촌수는 약간 떨어져도 루이가 태어날 때부터 한집에서 같이 살았던 아주 친한 숙모와 조카 사이다. 루이가 만약 그처럼 경솔한 말을 했다면 메리 대왕대비가 직접 루이를 불러서 타이르거나 가볍게 꾸중을 하면 했지 격노 운운할 사이가 절대 아니다. 상술했듯 내부적 합의였기 때문에 현장에 없었으면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조건 탓하기도 뭐하고. 이때 상황은 어느 기자가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마운트배튼]]의 결혼 이후 루이에게 앞으로 왕실의 성이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하자 마운트배튼 백작은 '이제 마운트배튼으로 바뀌는 게 맞는 거 아닐까요?' 하는 식으로 추측해서 대답했을 뿐이었다. 이때 정부에서 왕실의 최고 어른이자 윈저로 가문 이름을 바꿀 때 직접 참여했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국민들의 반독일 감정이 극도로 높아져서, 결국 왕실의 독일식 가문 이름까지 문제를 삼게 된다. 영국 왕실은 이런 국민 감정을 고려해 독일식 가문 이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작센코부르크고타]]를 영국식 이름인 [[윈저 왕조|윈저]]로 바꾸게 되고, 덩달아 비슷하게 영국에 거주 중이던 독일계인 바텐베르크 가문 역시 마운트배튼으로 성을 바꾸게 된다. 이렇게 왕실은 물론이고 자기네 가문 이름까지 바꿀 당시 루이는 10대 중반의 소년이었고, 이런 중요한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이 아니었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사관학교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다만 영국인으로서 정체성이 확고했던 자신에게 독일계라는 이유로 비난이 가해진 것에 대해서는 언짢게 여겼다고. 실제로 루이의 부친인 [[바텐베르크의 공자 루트비히|밀포드 헤이븐 후작 루트비히]]는 해군 제독으로 제1해군경을 맡고 있었으나, 독일계라는 이유로 세간의 비난이 너무 심해지자 채 몇달을 재임하지 못하고 사직해야 했고 이게 큰 상처로 남았는지 얼마 후 병으로 세상을 뜬다. 루이의 어머니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밀포드 헤이븐 후작부인 빅토리아]]도 사직한 남편을 보고, 본인의 사촌 [[조지 5세]]의 처사에 누구보다 분노했다고 한다.] [[테크의 메리|메리 대왕대비]]에게 당시 정확히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자문을 구했고 메리 대왕대비는 당시의 결정에 대해 설명을 해준 것 뿐이다. 이 이야기가 영국 왕실의 내부 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드라마틱하게 들렸는지 한 계단 건너뛸 때마다 점점 불어나고 침소봉대되어 지금처럼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왕가의 이름이 윈저로 고정될 뿐 왕족의 성씨는 윈저로 고정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마운트배튼의 자손들은 성을 써야 할 경우 마운트배튼윈저라고 쓴다. 다만 House of Windsor라는 가문의 이름은 앞으로도 쭉 고정된다. 성씨(surname)와 가문의 이름(family name)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선 위의 야사를 받아들인 것인지, 조지 6세의 상중에 루이 마운트배튼이 친인척들을 초대한 만찬에서 마운트배튼 왕조 운운하며 샴페인으로 건배까지 하고, 이걸 당시 만찬에 참가한 [[하노버]] 공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하노버 왕조|하노버 왕가]]의 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3세의 아들이다. 독일 귀족이지만 아버지 대까지는 영국 왕족이기도 했기 때문에 영국 왕족들하고도 잘 노는데, 시즌 1에서도 다른 왕족들과 사냥을 나갔을 때 [[빌헬름 2세]]의 소유였다는 대구경 사냥총을 쓴다.(작중에서 사용하는 총기 모델이 [[윈체스터 M1897]]의 개량형인 M1912이다.) ~~어지간히도 대구경인지 포 쏘는 소리가 나서 다들 그거 반칙 아니냐고 투덜댄다~~]가 이 메리 대왕대비에게 고자질하는(…)[* 다만 작중에서는 메리 대왕대비가 분노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사돈이라는 인간이 열은 그 만찬이 하필 [[조지 6세|아들]]의 장례식 바로 다음날이었기 때문. 작중에서도 메리 대왕대비가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에게 파티에서 샴페인도 마셨냐고 묻고, ~~옆에서 [[에드워드 8세|선왕]]까지 합세하자 겁먹은~~ 하노버 공이 시인하자 내 아들의 장례식 다음날에 샴페인으로 건배를 했냐며 차갑게 분노한다.] 에피소드가 있다. 실제 역사와는 조금 다르다고 해도 이처럼 흥미를 끌만한 에피소드를 드라마에 안 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